모든것을 잃어버리고 얻은 행복....

부평 가족모임/부평 유

그 어두운 터널 속에서 오직 유일한 희망으로 잡은 생명 줄인 G.A모임, 그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아픔들을 쏟아 놓을 수 있었다. 나의 말을 알아듣고 인정해 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살 것 같았는지...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리고 지금은 웃으면서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을 만큼 평온해 졌다. 기적인 것이다.

그때 토요일마다 같은 학교 선생님 내외와 우리 부부는 안동에서 두 시간쯤 거리의 대구로 매주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 그 당시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즐거움이었고 목표였다. 그 곳에서 숨을 쉬고 비로소 웃고 이야기하며 나는 차차 벌레에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추운 겨울에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 1시가 되었고 아이들을 지쳐 잠들었고 연탄불은 어김없이 꺼져 있었다.

같이 도박을 했어도 사람의 겪이 다른것인지 같이 모임에 나가는 그 선생님을 32평 아파트에 내려주고 우리는 어둡고 추운 굴속 같은 월 4만 원 짜리 그곳으로 와야만 했다. 그곳은 사람을 너무 비참하게 했다.

그곳에서의 삶을 몇 가지 적어본다.

하루는 밥을 하러 부엌에 나가보니 바로 내 옆에 뱀 한 마리가 스르르 지나간다. 부엌 옆이 바로 논과 밭이였기에... 쥐들의 극성도 여간이 아니었다. 씻어놓은 그릇들을 자기들의 놀이터인 양 놀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머리맡에 쥐똥이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아침마다 화장실 문제 또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꼭 필요한 기본적 삶인 입고, 먹고, 화장실 가는 것이 원활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삶은 차라리 동물의 삶이 더 행복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다른 것을 더 생각하고 바란다는 것은 오히려 사치이며 욕심이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아야하는 생존 게임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단도박 생활이 시작된 한 나는 희망이 있고 살아 갈 수 있다고 생각할 무렵 우리는 엄청난 회오리로 시달려야 하는 일이 일어났다.

맞보증 서주며 함께 도박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남편은 고소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몇 년을 두고 끌었던 그 사건은 남편의 구속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그 몇 년의 삶은 뼈가 녹아내리는 시간들이었다.

결국 94년 12월 한 많은 안동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은 교직을 그만두고 지금 이곳 부평으로 이사를 했다. 안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그리워서가 아니라 너무도 삭막한 곳이었기에..... 마치 유배당한 죄인처럼 고스란히 그 모진 것을 혼자만 끌어안고 살았던 그곳, 그곳에서의 탈출은 너무나 시원했다.

그 후로 단도박 생활은 하지만 피차 정신 미성숙으로 인해 엄청난 다툼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동안의 나의 힘들었던 삶을 남편에게 상기시켜서 기대고 위로받고 싶어했고,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가 지금 얼마나 힘들게 단도박 생활을 하는지 알아달라고...우리의 마음은 상대방 보다는 자기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서로를 감싸 안고 이해하고 다독여 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부평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남편에게 얽혀져 있던 끈을 과감히 잘라버렸다. G.A조차도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고 그의 수치와 불행이 왜 내것이 되어야 했었나, 그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난 나의 삶을 시작했다. 정신적 홀로서기가 되지 않는 한 분쟁이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생각은 남편이 교도소에 가게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너무나 힘들게 그리고 기를 쓰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나의 현실생활에서 그리고 감정까지도...그렇지 않았더라면 6개월이라는 세월을 나는 그렇듯 당당하게 버텨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이 너무나 여리고 정이 넘치고 넘쳐흘러서 주체할 수 없는 자가 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신께서는 미리 나에게 그와 마음으로부터의 결별을 연습케 하셨던 것 같다.

지난날 살아왔던 습관대로 그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려고 했더라면 어찌 하루인들 마음 편할 수 있었겠는가?

밥은 꼭꼭 잘 먹는지, 춥지는 않을까, 덥지는 않을까, 낮선 곳에서 적응은 잘하는지, 설움은 받지 않는지 등등.... 나의 생각으로 그의 인생을 살아가느라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그것들을 떨쳐 버렸다.

아이와 나는 살아야만 했고, 내 생전에 좀체로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그곳을 찾아다니며, 모든 현실을 그저 담담히 받아 들였다. 내 남편이라는 생각대신 그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의식은 오히려 그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고, 지나친 집착도 그리고 그와 연결하여 나의 연민에 빠지지도 않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나고 그가 나오던 날 G.A K선생님과 J여사님 그리고 여러분들이 새벽같이 남편을 맞아주는 그분들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함에도, 남편에 대한 반가움에도 나의 마음은 극도로 절재하게 되었다. 다시는 그와 얽혀져서 같이 진흙탕에 뒹굴고 싶지 않은 강한 결심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남편 없이도 살수 있어 이 남편이 없으면 부채관계도 나와 상관없게 되고, 시댁식구들과의 갈등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 이제 그들에게 주눅 들고 사람 대접받지 못하는 그것도 정말 싫다”. “이 남편이랑 함께 살아가는 한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더욱 나를 독하게 했다.

남편이 교도소에서 나오는 날 난 모질게 그를 몰아 부쳤다. “난 나의 인생을 살아야 해! 더 이상은 정말 싫어”하고 소리쳤다. 괴로워하는 그를 보면 가슴이 아팠지만 그의 환경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냉전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남편을 사랑하느냐’고 난 ‘이제껏 그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며 살았고, 정말 할 만큼 했다’고 떳떳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분은 ‘죽을 만큼 사랑했느냐’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래 그만큼은 사랑하지 않았어. 내 인생의 방해꾼이라고만 생각했지, 그의 인생을 측은하게 바라보려 하지 않았어.” 이제껏 남편의 울타리에서 편히 살려고만 했었는데 그 울타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고, 거창하게 홀로서기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날 밤 남편은 술도 마시지 않고 말짱하게 들어와서 씩 웃었다. 나 또한 그 웃음에 답을 하였다. 그날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서 무조건 나에게 빌겠다는 결심으로 들어 왔노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부부의 벼랑까지 갔었던 위기는 반전이 되었다.

그 날 이후 우리는 함께 살았지만 나의 신앙생활과 그의 G.A생활에 나도 그도 서로 강요하지도 간섭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그는 미친 듯이 G.A에 매달렸고 그리고 변해갔다.

일도 성실하게 하고 나의 짜증도 받아주며 화를 내지도 않고 점점 가정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변하는 그이 모습을 보며 때로는 미안해하며, 감사하며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다.

물 같은 남편, 불같은 나, 언제나 나만이 피해자이며 화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합리화 시키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 얼마나 독선이며 아집인지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결단코 성장 할 수 없는 것이다. 상대방을 내 틀에 맞히려는 어리석은 시도도 차츰 줄어들게 되며, 어쩔 수 있는 것과 어쩔 수 없는 것을 구별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용기를 배우게 되었다. 사춘기를 맞은 아들과의 전쟁 속에서도 이 방법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내 자신이 안 되는 것을 빨리 포기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실패 가운데서 발견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한다. 지나간 시절이 더 힘들었던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직업, 사회적으로 내밀 수 있는 명함, 그래서 그 안에서 보호받고 누리고 싶은 것, 그래서 남편을 붙들고 있었다. 내 손안에서 놓지 못함으로 인해 지고 가야만 했던 그 짐들은 너무나 무거웠고 허상일 뿐이었다.

넘어지면 넘어지고 바람불고 비 오면 맞게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나의 체면 가식 위선 불필요한 자존심이 또 잡고 있었다. 이제 다 놓아 버렸다 열 손가락 다 펴놓으니 얼마나 후련한지 모른다. 교만, 독선, 오만 다 포기하니까 오히려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새록새록 모든 일에 감사하며 그래서 행복하다. 그때 집이 없어서 우리 세식구 편안히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가끔 서울에 오면 지하철 타고 자나가면서 주택가 옥상위에 있는 옥탑 방을 보면서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금 2000만 원짜리 전세방에 연탄을 갈지 않아도 남방이 되는 도시가스에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온다. 이제는 수세식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어 수시로 다녀도 되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전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 남편의 모자라는 점만 보며 그를 탓했었다. 도박만 안했더라면 이 원망 때문에 그의 모든 것을 깍아 내리고 저주하며 어떻게 하면 괴로움을 줄까 연구했었다. 그의 도박 때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남편을 보면 말할 수 없는 신뢰감과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굽이굽이 폭풍을 함께 헤치고 나온 동지 같은 남편, 비록 가진 것 없고 명예도 없고 남 보기에 하잘 것 없는 택시 기사지만 그의 남다른 의지와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세상 누구보다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나는 거리낌 없이 자랑 할 수 있다. 남편의 질병으로 인해 외적인 모든 것을 잃었다. 자동차, 백화점쇼핑, 취미생활, 세련된 가구로 집치장하기,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투자하기, 동기간들 모임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하며, 외식 후 현금 척척 내기, 등등 그러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너무나 값진 행복을 얻었다면 남들은 코웃음 치겠지?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궁무진한 귀한 것을 많은 것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얻어냈다. 밥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 나오는 것 때문에 기쁘고, 남편이 아주 가끔 백 만 원 짜리 월급봉투 가지고 와서 기절하도록 감격해 한다.

살랑부는 봄바람, 파랗게 나오는 새싹, 피어나는 꽃 한 송이, 2000원주고 산 화분이 죽지 않고 잘 자라는 것, 이런 것들도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 원망과 시비가 그치고 사랑이 움트는 것, 용서하며 용서를 청하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닫혔던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고 시댁식구들과 마음으로부터 가까워지고,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인생의 패배자가 아닌 당당하게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아무 생각 없이 크게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