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자르면 무슨 소용이 있나 발가락으로 할 것인데”

L.A에서 이경수 기자 취재

미세스 김(42세)은 요즘 남달리 깊은 감회에 젖을 때가 가끔 있다. 그것은 그녀가 14살 때에 3살 위인 오빠와 그의 친구들이 화투놀이 하는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워 줄곳 놀음에 빠져 살아온 이래로 지난 10개월이 도박을 하지 않은 가장 긴 기간이었다는 것과 도박에 대한 유혹을 극복하려고 얼마나 자기 자신과 싸움을 하였는가를 회상하기 때문이다.‘결혼을 하여 첫 아들을 낳았을 때에 사흘 만에 난 도박판으로 달려가 앉아있었어요. 직장에서 돌아 온 남편이 아기가 혼자 우는 것을 보고 갓난아이를 안고 도박하는 곳에 찾아 왔지요.라고 미세스 김은 술회하였다.

그녀의 미국인 남편은 아내의 도박을 말렸고 이 때문에 부부싸움도 하였으나 이해심이 많고 아주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20년 전 아들이 두 살 때에 미세스 김은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몬타나주 작은 도시에 정착하였다. 거기서 그녀는 둘째 딸을 낳고 남편은 법률 공부를 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에 미세스 김은 놀음을 하지 않았다.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에 살면서 사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간은 오래가지 않앗다. 가까운 곳에 도박을 하는 한 부인을 만나서 미국식 도박을 배우게 되었고, 곧 도박장에 출입을 하게 되었다. 돈을 잃기 시작하면서 남편 몰래 개인체크를 많이 끊어 주었고 나중에는 유일하게 남아 있던 다섯 돈짜리 금목걸이까지도 전당포에 잡혀서 놀음을 하게 되었다.

“도박에 정신이 팔린 나는 남편과 자식에 대해서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 기저귀도 남편이 갈아 주고 부엌일도 남편이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큰 아이는 지금도 나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 합니다. ”라고 미세스 김은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한 사건이 일어났다. 목걸이를 맡겼던 전당포 주인이 살해 되었던 것이다. 조용한 이 도시에서 드문 일이었다. 경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목걸이 임자가 시 소속 변호사 부인의 것이었다는 것과 부인이 놀음 밑천으로 맡긴 것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얼마후 미세스 김은 현 미국인 남편과 만나 결혼하였다. 그러나 미세스 김의 놀음벽은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다. 집을 장만하려고 어렵게 모아 놓은 돈 3만불을 도박판에서 다 없애고 새로 산 차도 잡혀서 도박으로 날렷다.

돈을 잃을 적마다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수백 번 남편에게 약속을 하였지만 그 약속은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한번은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 도박을 안 하기로 맹세하겠다고 하자 “손가락을 자르면 무슨 소용이 잇나 다시 발가락으로 할 것인데....”

두 번째 남편 역시 이해심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를 깊이 사랑하였다. 그는 아내의 도박 병을 고쳐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아내가 도박중독증 환자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치료할 돈이 없었다. 남편은 아내를 권고하여 단도박 모임에 참석하였다. 처음에 미세스 김은 자기가 도박중독증 환자라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나 이따금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 볼 때마다 후회스러움과 잃어 버린 돈에 대한 아쉬움이 남곤 했다.

1993. 10월 4일은 미세스 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이 날은 미세스 김이 도박을 끊은 날이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한 날이다. “도박을 끊기로 결심한 후 일주일이 가장 어려웠어요. 설거지를 할 때도 트럼프 짝들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고 꿈에서도 놀음을 하곤 하였지요. 일주일 동안 도박을 하지 않고 지내기는 20년 만에 처음였습니다. ”라고 미세스 김은 말하였다.

도박을 끊은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선사하였다. 두 번째 주일에는 장미꽃 두 송이를 세 번째 주일에는 서로 색깔이 다른 장미꽃 세송이를 받았다. 그러나 네 번째 주일에는 네 송이의 카네이션을 받았다. 왜 바뀌었을까? 아네는 장미꽃이 카네이션으로 바뀐 이유를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장미꽃을 살 돈이 없었던 것이다.

미세스 김은 지금 매주 단도박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회원들 중에는 한때 사업에 성공하여 크게 돈을 벌었다가 도박으로 다 잃고 어려운 사람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도박 때문에 가정파탄을 일으킨 사람도 허다하다. 한인 이민 사회에 도박이 성행하고 그로 인해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단도박 모임을 헌신적으로 이끌고 있는 노선생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도박은 단지 개인의 일에 그치지 않고 가족에게도 고통을 주는 가족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