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젠가는 ....

부산 모임/부산 괴정동 박

내가 사는 집으로부터 십여 분을 걸어서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다. 싸리골이라는 이름의 나즈막한 계곡이다. 아침 등산 겸 식수를 마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좋은 환경이다. 집사람이 권하고 나도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약수터에 올라갈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언제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과음을 하거나, 너무 피곤해서 또 몸이 아플 때 등등이다. 오늘만 쉬고 다음 날 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어김없이 약수터를 찾겠다고 맹세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고 만다. 그럴 때마다 그 언젠가는 분명히 나도 약수터를 빠짐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곤 한다. 너무 쉽고 보잘것 없는 의지력의 시험이 아니다.

나에게는 그 언젠가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철저한 변명의 무기가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함정이다. 유혹을 즐기는 여유를 가지길 원하고 또 보여주고 싶은 저만의 허인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도박이란 유희를 즐기고 보여주다 보니 갖가지 변명의 이름을 갖다 붙이기에 얼마나 급급하였는지 모른다. 스트레스는 남보다 열배는 많고 너무 열심히 일하다 보니 밤새우기를 밥먹듯이 하고 유달리 내 주위에 사람들은 시도때도 없이 필요에 따라 죽어 나가고, 유명인사도 아니면서 무단히 기관에는 그렇게 많이 잡혀가는지, 때로는 그 잘 돌아가는 머리와 혀를 가지고도 할말을 잃어버린 적 또한 한두번이 아니었으니,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도 한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나 그 언젠가는 너무나 가볍게 모든 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는 강한 자만의 비장한 무기가 버티고 있었기에 나는 지금 그 언젠가의 세월 속에 여기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다.

세월은 찰라다! 왜?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가? 한 인생의 자국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제멋대로 그어져 있어도 괜찮은 것인가?

숱한 어지러움속에 어쩌면 나는 나 스스로 남긴 발자취조차도 제대로 찾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결코 짧지 않은 많은 시간을 짧다면 짧은 인생의 울타리 속에서 그 속살을 살찌우기는 커녕 야금야금 갉아 먹어 버리고난 지금, 나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헛된 자만의 미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잃고,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또한 모든 것들을 하나, 둘, 잃어버리고 나면 그 언젠가는 허망한 죽음이 기다리겠지만, 참으로 별 것 아니면서도 끈적끈적한 이 도박의 유혹으로부터 그 언젠가는 기약하지 않고, 지금 바로 이 찰라에 박차고 일어서는 용기야말로 소중한 모든 것들을 되찾을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늦은 시작이 곧 바른 것이란 말이 있듯이 G.A의 한 일원으로 이제 막 시작하는 마당이나 조그마한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며 이제 내일부터라도 그 언젠가를 기다리지 않고 나는 뒷산 싸리골 약수터를 부지런히 찾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