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의 꿈

사당동 : 신내 주

꿈, 환상 그리고 착각 속에서 맴돌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천년의 전설 속에 묻혀버린 어느 슬픈 아메바의 꿈에 대해 고백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아메바가 진화하여 내가 되었나 봅니다.

G.A협심자 여러분! 그리고 가족 여러분!

저는 사당동 모임에 나가는 Mr 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의 비슷비슷한 쓰라린 도박의 경험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힘께서는 도박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우리를 오늘 이 자리에 끌어 올려 흙탕물을 씻어내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부끄러운 저의 과거를 고백하고 또 그럼으로써 단도박생활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위대한 힘께 저의 모든 것을 맡기려 합니다.

과거에 나는 이맘때쯤이면 내 인생이 늘 빛나고 내 아내와 내 아이들과 행복한 그런 날을 보내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보다는 조금 덜 불행한 사람밖에는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그로 인해 이 아름다운 봄을 느끼지 못하고 영원히 땅속으로 추락해 버린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날들, 초등학교때 교내 태권도활동을 했고, 소심하고 마음 여린 선생님에게 말잘듣는 학생이었고, 부모 속 안 썩이는 착한 아들이었고, 중학시절 역시 평범하면서 성적도 10위간 정도를 유지하며 시 읽기를 좋아했고, 내성적이고, 나서지 않고, 늘 조용한 학창시절로 그 때의 친구들을 아직도 만나고 있을 정도로 우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고교시절 교내 서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보람찬 활동을 보냈으며 여느 학생들과 같이 팝송을 좋아했으며 FM방송에 빠져 살았습니다. 대학 진학후도 교내 학보기자로 일하며 공부보다는 그 외의 것에 비중을 두는 생활을 했고 짝사랑도 했고, 영화처럼 소설처럼 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 시절 또래들이 다하는 당구를 배웠고 고스톱이며 포커게임도 간간이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게임들은 오락과 친교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않았었고 그런 것을 할 줄 모르면 오히려 외계인 취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1982년 종교활동을 통해서 집사람과 알게 되었고 친구에서 연인으로 87년 결혼을 하였습니다.

병역을 마치고 직장을 잡기까지 1년반 정도, 건성으로 도서관을 드나들던 시절 입사시험에 한두번 떨어지면서 삶의 불안을 어렴풋이 느꼈고 또 그 당시 집사람과의 연애가 절정에 이르러서 어수선한 기분으로 한마디로 백수인 나는 책가방과 빈 도시락이 든 가방을 들고 애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데이트를 즐기다 보니 데이트 비용은 대부분 집사람의 몫이 되었습니다.

87년 나와 집사람이 27살 나던 해 포항제철과 서울시 말단 공무원에 합격하였는데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기에 서울에 남기로 결정하고 그해 7월 발령을 받고 두 달 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단칸 전세방으로 시작을 하였지만 백수생활에서 벗어났고 사랑하는 여자와 사는 재미가 있었으나 공부에 대한 미련도 있어서 주말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생활이 1년정도 지속되었습니다. 공부하는 것에 대한 역부족을 느꼈고 직장생활 결혼생활에서 남과 경쟁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라며 공부를 포기했습니다.

1990년 특별한 취미가 없었던 나로서는 늘상 노는 수준이 사무실에서 탁구를 치거나, 퇴근후 당구장이나 고스톱, 가끔 등산 그러나 승부를 겨루는 게임은 한 번 시작하면 너무 몰두하여 남보다 먼저 일어나는 일이 없고 마지막 자리를 지켰습니다.

94년 봄 신용카드회사 직원들이 사무실을 경쟁적으로 방문하여 발급내역서에 몇 자 적어 넣기만 하면 통장이며 신용카드를 보내 주었습니다. 또 가끔 들리던 보험회사의 권유로 연금보험을 들고 필요치도 않은 돈 500만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그 이전까지 나는 신용카드라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를 정도로 모든 재정관리는 집사람이 도맡아서 했으며 내가 필요로 하는 생활용품은 아내가 다 알아서 챙겨주었으므로 돈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규통장에 들어 있는 500만원과 7개의 신용카드, 마음만 먹으면 단 몇 분만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천만원이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으며 이것은 나의 가슴을 점점 부풀려 놓았고 지금과는 다른 도박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94년 가을, 예기치 않게 우연히 참석한 포커판은 나를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소심하던 나는 포커판에만 가면 이상스레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포커는 학창시절 동전따기 놀던 기억을 되살려서 하니 5년이상 경험자들을 당해낼 재주가 없었습니다. 그날 신용카드를 서비스 받아 100만원정도를 잃고 나서도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끼를 던져 놓았다고 생각하니 그 판돈이 다 내돈 같았고 절로 신이 났습니다. 두 번째 판에서 또 100만원을 잃고 세 번째 판에서는 100만원 정도를 따고 또 그 다음에는 150만원을 잃고 그러면서 돈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했지만 항시 돈 따는 생각만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한 마리 불나비가 되어 내 살이 타는 줄도 모르고 불만 보면 뛰어 들었습니다. 아침 출근길부터 도박판을 생각했으며 근무시간에도 도박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차 있었고 모든 일을 도박 다음으로 재껴 놓았습니다. 퇴근 후에는 열 일을 제쳐놓고 도박판을 찾았으며 늘 한 번 시작되면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기진맥진하여 근무를 하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먹자마자 잠자리에 들면서 아내의 하소연에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곧 청산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하며 무마시켰고 그때마다 각서를 썼습니다.

94년 10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도박은 95년 2월경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는데 재정적으로 길이 막혔던 것입니다. 대출금 500만원과 신용카드로 마련한 1700만원에 나는 두 손을 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현금서비스 메울 날을 얼마 안 남기고 나는 어쩔 줄을 몰랐으며 이 날짜를 넘기면 감옥에 가는 줄만 알았습니다. 나는 이일을 해결하려 고속터미널의 화장실에 장기 매매를 한다는 연락처까지 수첩에 적어둔 상태였습니다.

새벽 3시, 자는 아내를 깨워 나는 다짜고짜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나는 죽일 놈이다. 개새끼다. 앞으로 당신과 우리 애들만을 생각하면서 살 테니 도와 달라고 울었습니다. 정말로 그때 나의 심정은 앞으로 한 번 더 도박을 하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은행문제가 넘어갔을 때 10일도 안돼서 도박에 대한 집념은 목숨을 걸만큼 강렬하게 타올랐습니다.

95년 3월 아내와 누이의 권유로 G.A모임에 참석하였고 그때 G.A를 바라보는 나의 눈은 도박의 패배자들이 모여서 신세타령이나 하는 모임정도로 보였고 나는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모임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으며 2차 모임까지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재기하리라. 승리하리라.”다짐하였습니다. 그 주에 나는 체신청에서 천만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도박하고자 하면 금융기관은 나를 환영했으며 마음만 먹으면 천만원 정도는 쉽게 융자를 받아 도박판을 전전할수록 나의 절제력은 완전히 상실하였고 판돈은 점점 상승했으며 심신이 황폐화해졌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하나로 정해졌습니다. 도박판에서의 승리! 그것이 나의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G.A협심자로부터 두 번째의 전화를 받았으나 너무 지치고 체력이 못 따라 집에 돌아와 일찍 쉬려는 때였으므로 내 승리의 장애물로만 여겨졌습니다. 잃고 따기를 반복하면서 돈이 없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하게 줄었다 늘어나고 나의 마지막은 무엇일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승리만이 나를 지켜줄 수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눈은 매일같이 울어 퉁퉁 부어 있었고 퇴근시간이면 어머니께서 나를 지키느라 사무실앞에 대기하고 있고, 모든 생활은 비정상적이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한 주일은 쉬고 다시 도박판에 끼어서도 일정기간에 밤 11시면 무조건 일어나자는 스스로의 약속은 번번이 파기되고 아내와 한 달간 별거도 해 봤으나 나에게 브레이크는 없고 엑셀레이터만 남아 있었습니다.

한 달이면 몇 번씩의 각서를 쓰고 아내에게 미안하여 요구하지도 않은 각서를 쓰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절제 없음에 완전히 환멸을 느꼈으며 아침 출근할 때는 도박을 않겠다고 생각하지만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오면 도박장으로 가고 싶어 안달이 나서 전화가 없으면 전화해 보고 게임이 없는 날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습니다. 이러는 사이 도박판에 가지고 가는 돈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상승곡선을 그렸고 만족할만한 돈이 안 되면 사채시장에서 한달 봉급이 넘는 돈을 선이자를 주고서 가져왔습니다.

95년 11월 3일 G.A에 아내와 같이 나왔습니다. 6개월만에 다시 찾은 G.A, 그간의 부채는 엄청나게 늘어나 그것으로 파멸을 맞을 것 같았고, G.A와 도박을 병행하였으나 도박은 나의 위안이 아니었으며 그로 인해 나는 침몰하는 것 같았고, 더 이상의 도박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뻔했습니다. 나는 도박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 무모한 게임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항복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도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항복합니다. 완전한 항복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늘 이기려고 했으니까요.

부모, 형제, 친구, 나와 함께 한 도박자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피해자입니다. 아내에게 정말로 미안합니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입니다. 당신이 있음으로써 이 봄의 햇살을 느끼며 대지를 향해 마음껏 숨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늘 나를 감싸고 있던 사표, 이혼, 자살, 이런 우울한 것에서 벗어나렵니다.

이제 도박을 끊은 지 100여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1년 몇 달의 엄청난 도박은 내 생애 전체를 지배받게 할 것이지만 모든 것을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가정을 되찾고 내 생명을 지켰으니까요.

G.A협심자와 가족여러분들! 4월입니다. 그리고 봄입니다. 지난날 어둠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니 너무나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지금 내가 도박을 끊었다는 것이 감상이 아니길 빕니다. 그것은 10년, 20년, 30년후에 증명될 일입니다. 그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하루하루를 정진하여 살겠습니다.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그리고, 여보! 당신을 사랑합니다.